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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보다 편집에 더 공을 들인 번역서다. 살짝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생각도 들고, 판매 부진을 예상해 책의 가격을 다소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한 것도 걸린다. 도널드 서순이 이 책을 펴냈을 때는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들에게 유럽근대문화사를 조목조목 살펴볼 수 있게끔 도와주는 교양서로 자리매김했을 법한데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근대성과 유럽문화의 상호작용을 거시적으로 종합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입문서다. 제1권 서막 1800-1830 에서는 산업화 이전 단계에서 벗어나면서, 책, 신문과 정기간행물, 이미지, 악기와 악보, 오페라, 연극 등 주요 문화형식이 귀족의 전유물에서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살펴본다. "1800년에 책을 사고, 도서대여점에서 책을 빌리고, 신문과 잡지를 구독하고, 연주회에 참석하고, 극장에 가고, 악기와 악보를 사서 집에서 음악을 연주할 의도와 능력이 있었던 유럽인은 누구였을까?"(1권 41쪽) 전근대는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하고자 하는 압력이 강했다. 반면에 근대는 새로운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충동이 강했다. 혁신적이거나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문화는 과거와 단절하고자 하는 자의식적 욕망이다. 문화와 예술은 대체로 점진적으로 진화해왔으나 늘 그 흐름을 중단시키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협소하게 본다면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할 수 있는 문화 텍스트와 다양한 문화적 산물에 국한된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문화산물이 상품으로서 시장을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고 판매되고 소비되는 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말한다면, 문화는 단수가 아닌 복수형의 문화들 로, 이는 일군의 가치와 더불어 일군의 관행을 뜻하며,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추구하는 여가의 종류, 우리가 지키는 제의, 우리가 수용하거나 만들어내는 전통, 우리가 따르는 관념들을 포함한다. 이 때의 문화는, 현대적인 표현을 쓰자면, 생활양식이다. 애국적인 지식인들은 이른바 민족문학 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령 보수적인 독일 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1772-1829)은 문학이란 "한 시대의 정신과 한 민족의 성격이 스스로를 표현해내는 수단"이라고 보았고, "인쇄기의 발명과 도서산업의 팽창으로 완전히 무가치하고 어리석은 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고 못마땅해했다. 민족문학의 정립기는 국제문학의 정립기와도 맞물린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주요 고전, 르네상스 시대 작품 몇 편 그리고 프랑스와 대영제국의 문학이 리스트에 올랐다. 책은 여전히 배타성과 과시적 소비가 결합된 사치품이었다. 인쇄물, 신문, 책은 19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누구든 집으로 가져갈 수 있고 글만 읽을 줄 알면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 없이도 소비할 수 있는 유일한 문화상품이 되었다. 19세기가 시작될 즈음, 크게 팽창한 도서시장의 독서공중은 관리, 서기, 법률가,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와 나머지 부르주아 계급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지성과 문명의 상징이었다. 대학도서관과 특히 도서대여점의 팽창으로, 독서공중은 점차 확산되어 중간계급 하층과 숙련노동자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200년 동안 유럽인이 소비해온 문화형식을 총망라하는 대작! 1800년에서 2000년까지 유럽인들이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해온 거의 모든 문화형식을 총망라한 책이다. 유럽 대륙과 러시아는 물론 미국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 시기, 주제를 다루기 위해 저자는 문화산물의 가치와 의의를 평가하거나 전통적인 고급문화/저급문화 구분을 강조하는 대신, ‘문화시장의 팽창’이라는 관점을 채택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부유층과 엘리트층이 사치스럽게 즐긴 ‘고급’문화뿐 아니라, 까막눈 하층민의 고된 삶을 위로해준 ‘저급’문화와 20세기 문화의 주역인 ‘대중’의 문화까지 폭넓게 조망한다. 저자는 저급문화라도 시장에서 상품으로서 많이 사고 팔린 것이라면 그에 합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외젠 쉬, 세귀르 백작부인, 프랜시스 트롤럽처럼 과거에 비해 인기가 현저히 떨어졌거나 이제 찾아 읽는 사람이 별로 없는 작가라도 당대의 관점에서 균형 있게 서술한다. 요컨대 행상문학에서 싸구려 책, 공포소설, 범죄소설, 연애소설, 성애소설, 멜로드라마, 이탈리아의 즉흥극인 코메디아델라르테, 카바레, 민중극, 삽화와 풍자화, 만화, 대중언론, 대중음악, 포르노그래피, 텔레비전 드라마와 오락물, 리얼리티 TV에 이르기까지, 19세기의 하층민과 20세기의 대중이 즐긴 문화를 고급문화 못지않게 골고루 다룬다. 이 책, 제1부 ‘서막’(1800~1830)에서는 유럽의 문화산업이 산업화 이전 단계에서 벗어나면서 책, 신문과 정기간행물, 이미지, 악기와 악보, 오페라, 연극 등 주요 문화형식들이 귀족의 전유물에 머물지 않고 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으로 자리잡는 과정과 그 과정을 가능하게 한 배경요인들을 폭넓게 살펴본다. 관련영상 보러가기▶
제1부 서막 1800~1830
머리말
제1장. 문화 팽창의 근원
제2장. 승리한 언어들
제3장. 출판
제4장. 행상문학
제5장. 근본을 찾는 이야기들
제6장. 동화
제7장. 소설
제8장. 선구자들
제9장. ‘밝은 광채 속’의 월터 스콧
제10장. 문화적 패권
제11장. 이것은 픽션이 아니다
제12장. 뉴스와 이미지
제13장. 음악시장
제14장. 청중과 공연자
제15장. 오페라
제16장. 연극
제1부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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